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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양천씨 동도사실 후
작성자 관리자 [2023-04-27 17: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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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 말

문중(門中)의 종사(宗史)는 동일 혈족의 원류(源流)를 밝히고 종인의식(宗人意識)을 자각함으로써 종친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나아가 선대의 얼을 되새겨 조상의 위덕(威德)과 유훈(遺勳)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성스럽고 존엄(尊嚴)한 기록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핵가족 시대를 사는 요즘 세대의 생각은 조금 달라서 종사(宗史)를 논하고 족보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마치 진부(陳腐)한 유교 사상의 유물인 양 치부(置簿)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면에는 가문의 격을 높이고 조상을 위하고 싶은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지만 조상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과장한다거나 심지어 예전에는 족보를 사고파는 예도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역사전문가라는 사람 중에서도 편협한 가문 우월주의에서 역사를 해석하고 호도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종사록(宗史錄)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명확하게 기술되어야 마땅하므로 추호(秋毫)의 과장(誇張)이나 왜곡(歪曲)이 허용될 수가 없는 까닭이다.

 

주지(周知)하는 바와 같이 우리 영양천씨 문중의 종사는 명나라 총독장 천만리(千萬里) 장군께서 임진왜란 때 동정군(東征軍)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에 남아 후손들이 중시조로 모시게 됨으로써 종사가 시작되었으니 당시로부터 고작 420여 년에 불과한 짧은 역사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 문중의 종사록은 과연 올바르게 편찬되었느냐 하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천만리(千萬里) 중시조께서 1592년 임진왜란 때 이여송과 함께 동정군(東征軍)으로 파병되어 정란(靖乱)의 공훈으로 화산군(花山君)의 작위(爵位)를 받으시고 세록(世祿)으로 장자 상()은 종2품 가선대부 한성부 좌윤(從二品 嘉善大夫 漢城府左尹), 차자 희()는 종6품 행 평구도 찰방(從六品 行 平邱道察訪)으로 특임되어 후손들의 장래도 보장되었으나 명나라의 패망과 정묘호란(丁卯胡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조선이 청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자 명인(明人)의 포도(砲徒)를 용은(容隱)하지 말라는 청()나라의 압력에 후손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숨어 살게 되면서 200여 년간의 종사가 단절되는 암울(暗鬱)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수다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우리 선조들께서는 독실한 숭조상문(崇祖尙門)의 성심으로 중시조의 황단배향(皇壇配享)과 시호(諡號) 추증(追贈)의 영예를 되찾는 등 보본돈종(報本敦宗)의 본보기를 보이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탄성(殫誠)의 기록들마저도 3세조 서열문제로 인하여 바르게 보존되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사장(私藏)되거나 종사가 왜곡되어 오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히 지난 1996년에 중앙종친회가 늦게나마 영양천씨종사록(潁陽千氏宗史錄)을 처음으로 간행하여 종사(宗史)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집대성(集大成)되었다고는 하나 관심을 두고 세심히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더 많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중앙종친회가 설립된 것이 지난 197912월이므로 설립된 역사가 너무 짧아서 종사에 관하여 깊이 연구되거나 논의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1772년에 최초로 족보가 발행된 이후 종사의 연원이 어떻게 밝혀지고 어떻게 정립됐는지도 불분명하게 기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왜곡된 내용이 너무 많아 후손들이 종사를 바르게 알고 명확히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오히려 일부 후손 중에는 종사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는다거나 과소평가하는 이들이 있으니 종사를 바로 알고 새롭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필자도 역시 젊은 시절에는 종사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종사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선대의 소목(昭穆)을 명찰(明察)하고 조상의 위덕(威德)과 유훈(遺勳)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후손이 된 당연한 도리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을 찾는 길이라는 생각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종사록에서 밝히지 못한 미비한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하여 20123월에 천리향 카페를 개설하고 자료수집과 함께 종사를 연구하기 시작하여 이제 왜곡된 종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을 다수 찾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목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중시조의 친필

2. 학봉일고(鶴峯逸稿)에 수록된 증시(贈詩)

3. ()조의 한성부좌윤 승전(承傳) 교지(敎旨)

4. 4세 찬윤(贊閠)조의 남원부 병자년(1666) 호구

5. 이탁영(李擢英)의 정만록(征蠻錄)

6. 천씨 3세 유사(遺事)의 동정기(東征記)

7. 금강산 청덕인용비(淸德仁勇碑)의 입증기록

8. 규장각 왕실 자료 천씨등급수교(千氏謄給受敎)

* 천만리 후예(後裔)에게 등급(謄給)한 수교

* 천만리 후손 천세환 등 30인에게 등급한 수교

* 천만리 후손 충의위 소속 천종실 등 10인에게 등급한 계하사목(啓下事目)

9. 황조인본조충신자손록(皇朝人本朝忠臣子孫錄)

* 1824년 문중에서 책으로 발간된 존주록 (154인의 명단)

* 1826 병술년에 작성된 황조인본조충신자손록 (209인의 명단)

* 1833년 계사년에 작성된 황조인본조충신자손록 (54의 명단)

10. 조선왕조실록 기사(1)

* 순조61806713일 기사: 천만리 후손의 황단망배 입참을 청하다.

11. 일성록 기사(7)

* 순조 61806317일 기사 : 명천 천일시 등 가전상언(駕前上言)
* 순조 61806713일기사 : 명천 천일시 등 횡단 이참을 윤허함
* 순조9180999일 기사 : 명천의 유학 천일시의 두 번째 상언
* 순조10181037일 기사 : 천일시의 두 번째 상언에 조치하다
* 순조111811320일기사: 예조가 경향(京鄕)의 상언에 회신한 계

* 순조1218121012일 기사: 천득제의 상언에 조치하다.

12. 승정원일기 기사(4)

* 순조71807510: 임금이 대보단 봉실에 이르러 예를 행하다

* 순조1218121028: 예조의 상언 16번째를 윤가(允可)하다.

* 순조131813225: 천득제의 상언에 조치하다.

13. 각사등록 기사(2)

* 순조61806년 월일: 화산군 천만리의 장적을 찾도록 경조에 분부할 것

* 순조61806711: 천만리의 자손에게 북원망배에 참여토록 함

14. 시호(諡號) 증시(贈諡)와 관련된 기록

* 중시조의 시호를 청원하는 상소(上疏) 기록

1901. 9. 30 고종실록 의관 이봉래 천만리의 시호 제수를 청하다.

1901. 9. 30. 고종시대사 중추원 의관 이봉래(李鳳來) 등이 상소

1901. 8. 18. (9. 30.)일성록 의관(議官) 이봉래(李鳳來) 등이 상소

1901. 8. 18. (9. 30.)승정원일기() 의관(議官) 이봉래(李鳳來) 등이 상소

* 비답이 늦어지자 대신들이 시호제수를 건의한 기록

1902. 2. 2 (12. 24.) 순종실록 윤용선이 시호 제수에 대하여 건의하다.

1902, 2. 2. (12. 24.) 일성록 윤용선이 시호제수를 건의하다.

1902. 2. 2.(12. 24.) 장례원일기 윤용선이 시호 제수에 대하여 건의하다.

* 중시조의 증시(贈諡) 결정

1910. 7. 26. 순종실록, 일성록, 장례원일기

송익필 등 28명에게 시호를 주다.

* 동국시호(東國諡號) : 낙점을 받은 시호망(詩號網)

여기서 필자가 기술하려고 하는 내용은 새롭게 수집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정사(正史)의 종사록(宗史錄)을 편찬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각사등록과 같은 사기(史記)나 기타 규장각 왕실자료의 천씨등급수교(千氏謄給受敎) 등 그동안 종사에 밝혀지지 않았던 기록들을 통하여 종사를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려고 한다는 점을 밝히면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화산군 천만리 중시조의 동도 사적을 입증하는 자료들을 먼저 살펴보고 우리 문중의 종사가 언제 어떻게 밝혀지게 되었고 어떻게 정립됐는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사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두고 살펴봄으로써 종사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아울러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더 많은 자료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므로 종인 여러분들께서도 종사(宗史)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소중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집대성(集大成)하는 데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리는 바이다.

찰방공파(察訪公派) 군수공계(郡守公系)

보령종친회 16세 택호(澤鎬)